채문사, 나이가 들어도 즐겁게 사는 책 만들기
- 문화일반 / 이문수 기자 / 2020-01-02 10: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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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분만 만드는 1분 가정식. 채문사 |
지하철 안에서도 가볍고 한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스마트 디바이스에 눈을 고정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책을 펼친 사람은 하루에 한두 명 볼까 말까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1년간 책을 한 권 안 읽는 사람은 우리 인구의 거의 절반. 십여 년 전부터 한국 출판업계의 위기가 도래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데도 매년 수많은 출판사가 생겨나고 사라진다. <채문사> 역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설립되었다.
2018년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을 통해 설립된 채문사의 캐치프레이즈는 AGE-FREE MEDIA로, ‘나이가 들어도 즐겁게 살기’를 돕는 ‘사회적 출판’을 지향하고 있다.
사실 <채문사>라는 사명은 단기 4280년(1947)에 대표의 조부인 인명환 씨가 창업한 출판사에서 따온 것이다. 채문사에서는 『도이치 말 독본』(한남구, 단기 4221,), 『헌법해의』(유진오, 1952년), 『고향』(인수환, 1957) 등 지식서, 문학 서적은 물론 외국어 학습 잡지 등 당시 상황에서는 파격적인 서적을 다수 출판하였다.
채문사의 대표 인세호는 고려대학교 박사 과정 중 조부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유니버설 디자인’ 즉 제품이나 시설,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가 거주하던 쓰쿠바시 시민 중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전체의 20%로 (서울은 13.5%) 다섯 명 중 한 명에 해당한다. 또한 140개국에서 온 약 1만 명의 외국인이 생활하고 있어, 일본의 다른 지역보다 외국인의 비율이 5배 높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일본의 다른 지역보다 언어를 모르거나 몸이 불편해도 생활하기 편하도록 도시 외관과 행정 제도가 설계되어 있다.
그것을 보고 민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한 끝에 첫걸음으로 유니버설 디자인을 도입한 ‘고령자도 읽을 수 있는 서적’ 출판을 선택하게 되었다. 고령자를 첫 타깃으로 정한 이유는 장애인이나 외국인의 당사자성이 없고, 때마침 찾아온 초기 노안으로 인해 독서의 불편을 겪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 인터넷을 통한 자료 제공은 서비스가 종료되면 사라지지만, 한 번 종이로 출판한 책은 사라지지 않고 인근 도서관에 신청하면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된다는 이유로 서적이라는 수단을 선택하였다.
채문사의 책은 독자층을 고려하여 하드커버를 지양하고 ‘가벼운 책’을 지향하며, 글자 또한 눈이 피곤하지 않도록 사회적 기업인 (주)디올 연구소가 개발한 노안 및 저시력자를 위한 특수 폰트를 사용하여 독자의 신체적 부담을 최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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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깎기 시인, 날개를 달다. 채문사. |
이 책에는 47년생 윤복녀, 52년생 이명옥, 53년생 김영숙, 62년생 유미숙, 5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시니어 작가들이 3년간 쓴 수필이 담겨있다. 이들 네 작가는 각자 다른 사정으로 어렸을 적 배움의 기회를 놓쳤지만, 성인 문해 교육을 통해 한글을 읽혔다. 그리고 글자를 읽고 쓸 줄 알게 된 데에 만족하지 않고 마들여성학교에서 만난 박미산 시인과 함께 1년간 시를 공부하여 첫 시집 『잠자는 나를 깨우다』를 발표하고, 3년이 지나 수필집을 엮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채문사는 의식주에 대한 정보 전달은 물론, 고령자의 문예 활동을 지원하는 등, 책을 매개로 한 ‘40+ 생활’ 콘텐츠를 다루고 있다. 2020년 내에는 다리가 약한 고령자와 시설 관계자를 위한 『앉아서 하는 뇌 운동&스트레칭』, 중년 이상 여성의 삶을 다루는 서적 등의 출판이 예정되어있다.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서도 출판업의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사회적 출판’을 내건 채문사는 2019년 12월 고용노동부 지정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앞으로도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유의미한 콘텐츠를 기획하여 차근차근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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